예술

주인공의 여자친구

2016. 11. 8. 16:30

마블 영화를 볼 때마다 주인공 여자친구들이 참 불쌍해진다. 자의식 쩌는 남자 주인공들이 직업적 성취, 자존심 싸움, 심지어 세계평화수호(!!!)를 하겠답시고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며 난장판을 만들어놓으면 그걸 수습하는 건 언제나 예쁘고 똑똑하고 남자들에게 인기도 많은 애인의 몫이다. 가끔 일이 잘 안 풀릴때면 옆에서 징징거림을 들어주다가 결국 폭발하여 주인공 곁을 떠나고 이내 화면에서 사라지는 게 그들의 역할이다. 오늘 본 닥터 스트레인지도 마찬가지. 본인이 아쉬워서 찾아간 스승 앞에서까지 의사 노릇하려 들던 스티븐은 이제 시공간을 움직이며 지구를 지키는 일을 맡게 되었다. 쿠키 영상을 보니 어벤져스와 어울릴 모양인데 앞으로 얼마나 많은 난장판을 만들고 다닐지 참 걱정된다.

의도주의란 예술 작품을 만들어 낸 작가의 의도가 해당 작품의 올바른 해석이라고 주장하는 이론이다. 예를 들어, 영화 감독이 사회 현실을 비판하기 위해 영화를 한 편 찍었다면, 해당 영화의 해석은 반론의 여지 없이 반드시 사회 현실 비판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의도주의에 대한 반증은 의도주의 무용론에서부터 시작한다. 즉, 작품을 감상하는 사람들은 결코 작가의 의도를 100% 알아낼 수 없다는 것이다. 작가가 이미 세상을 떠난 경우는 말할 것도 없고, 설령 살아있다 하더라도 작품의 의도 자체를 온전히 밝히는 경우도 많지 않다.

어떤 사람들은 작가에 대한 배경 지식을 활용함으로써 의도주의에 힘을 보탤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작가가 살았던 당대 사회 현실이나, 작가에 관한 각종 기록들, 그리고 작가의 예전 작품과 화풍 등을 토대로 의도를 추론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모든 작가가 작품에다 자신의 삶을 반영하는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어떤 작가는 일부러 자신의 삶과 거리를 두며 작품을 만들어냈을 수도 있다. 이런 경우 배경 지식에 의존하여 의도를 추론하면 완전히 틀린 추론을 할 수밖에 없다.

또, 작가의 삶에 대해 완벽히 안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무리 유명한 사람이라도 공적인 삶과는 별개로 사적인 삶의 영역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작가의 사적인 삶이 어떠했는지, 그리고 작품의 어떤 부분이 어떻게 그의 사적인 삶과 연관되는지 파악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무엇보다도 의도주의는, “작가의 본래 의도”와 “작품에 실현된 의도”를 뭉뚱그리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즉, 작가가 어떠한 의도를 가지고 작품을 만들었는데, 실제로 만들어진 작품은 그러한 의도를 지지해주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근거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의도주의자는 이를 두고 “작품이 잘못 만들어진 것에 불과하다.”라고 항변할지 모르나, 의도주의 자체가 두 가지 상반된 의도를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여전하다.

그러자 의도주의자들은 이른바 ’가설적 의도주의’를 주장하기에 이른다. 이들이 말하는 ’의도’란, 작가의 본래 의도가 아닌, 작품에 나타난 의도를 찾는 것이다. 이 때 작품에 나타난 의도를 찾기 위해 예술에 대한 충분한 지식과 공감 능력 등을 갖춘 ’이상적 감상자’를 상정하고, 이 이상적 감상자가 작품에서 찾아낼 수 있는 최선의 의도를 작품의 의도로 삼는 것이다.

가설적 의도주의는 의도주의의 근본적 문제점인 ’작가의 의도’와 ‘작품의 의도’ 사이의 대립을 간단하게 해소할 수 있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가설적 의도주의는 사실상 작품 안의 내재적 의미를 중시하는 내재주의와의 차이점을 딱히 찾아보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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