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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말씀

2017. 3. 12. 10:36

로마제국은 내부의 분열과 혼란 때문에 멸망한 것이 아니라 번영 때문에 붕괴되었다는 것이 몽테스키외(Charles De Montesquieu)의 통찰이다. 특정한 규모에서 작동하던 기제는 규모가 달라지면 더 이상 작동하지 않게 된다. 방어기제가 효율적으로 작동하는 경우 도전과 갈등은 발전과 번영의 원천이 될 수 있으나 조절시스템의 임계점을 넘어선 경우에는 국가는 위기에 직면하게 되고 결국 멸망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 

맹자의 고사에 나오는 피음사둔(詖淫邪遁)이라는 말이 있다. “번드르한 말 속에서 본질을 간파한다.”라는 뜻이다. 말과 글, 주장과 주의 속에서 도처에 숨겨진 함정과 그물에 방심하면 자칫 당하기 쉬운 것을 경계하는 말이다. 피청구인 주도세력과 북한의 각종 전술을 간파할 수 있는 능력 없이 그들의 글을 읽고 주장을 이해한다는 것은 그들의 함정에 빠지기 쉬운 위험한 일이다. 그들의 가면과 참모습을 혼동하고 오도하는 광장의 중우(衆愚), 기회주의 지식인ㆍ언론인, 사이비 진보주의자, 인기영합 정치인 등과 같은, 레닌이 말하는 ‘쓸모 있는 바보들’이 되지 않도록 경계를 하여야 한다. 스스로를 방어할 의지가 없는 사람들을 보호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아주 작은 싹을 보고도 사태의 흐름을 알고 사태의 실마리를 보고 그 결과를 알아야 한다(見微以知萌 見端以知末).”는 것이 옛 성현들의 가르침이다. 따라서 우리의 미래와 생존에 관한 판단에는 무엇보다 선입견이나 편견을 배제한 통찰이 필요하다. 

민주주의는 자유로운 의견과 비판, 모든 사상과 문화를 허용하고 보장하며, 또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우리 인류가 발전시켜온 민주주의의 최고의 장점이고 가치이기도 하다. 그러나 민주주의 자체를 부정하고 그 근본을 무너뜨리려는 행위에 대해서는 단호히 대처해야 한다.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의 바탕인 자유민주주의의 존립 그 자체를 붕괴시키는 행위를 관용이라는 이름으로 무한정 허용할 수는 없는 것이다. 뻐꾸기는 뱁새의 둥지에 몰래 알을 낳고, 이를 모르는 뱁새는 정성껏 알을 품어 부화시킨다. 그러나 알에서 깨어난 뻐꾸기 새끼는 뱁새의 알과 새끼를 모두 둥지 밖으로 밀어낸 뒤 둥지를 독차지하고 만다. 둥지에서 뻐꾸기의 알을 발견하고 적절한 조치를 한 뱁새는 자신의 종족을 보존하게 되지만, 둥지에 있는 뻐꾸기의 알을 그대로 둔 뱁새는 역설적으로 자기 새끼를 모두 잃고 마는 법이다. 

― 헌재 2014. 12. 19. 2013헌다1

통합진보당 해산 심판 사건에서 안창호, 조용호의 보충의견 일부를 따온 것이다. 처음 이 부분을 보았을 때 굉장히 황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본인의 논리를 전개하는 과정에서 굳이 필요치 않은 옛 학자들의 말이나 중국 고사를 인용했기 때문이다. 방어적 민주주의의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몽테스키외와 맹자를 끌어온다든지, “아주 작은 싹을 보고도 사태의 흐름을 알고 사태의 실마리를 보고 그 결과를 알아야 한다.”, "뻐꾸기는 뱁새의 둥지에 몰래 알을 낳고, 이를 모르는 뱁새는 정성껏 알을 품어 부화시킨다."와 같은 이상한 비유들을 끌어오는 것은 법률 문서에 등재되기에는 적절치 않아 보인다.

“지도자가 위법한 행위를 했어도 용서한다면 어떻게 백성에게 바르게 하라고 하겠는가(犯禁蒙恩何爲正).”라는 옛 성현의 지적이 있다.

(중략)

일찍이 플라톤은 50대에 저술한 「국가」에서 “통치하는 것이 쟁취의 대상이 되면, 이는 동족간의 내란으로 비화하여 당사자들은 물론 다른 시민들마저 파멸시킨다.”고 경고했다. 이러한 플라톤의 경고는 우리가 권력구조의 개혁을 논의하는데 있어 시사하는 바가 크다.

(2) “오직 공법을 물같이, 정의를 하수같이 흘릴지로다(아모스 5장 24절).” 성경말씀이다. 불법과 불의한 것을 버리고 바르고 정의로운 것을 실천하라는 말씀이다.

― 헌재 2017. 3. 10. 2016헌나1

3년이 지난 지금, 안창호 재판관은 아직도 그 버릇을 못 고친 모양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파면 여부를 심판하는 결정문에서, '제왕적 대통령제'가 이 모든 사건의 원흉이라며 현재 헌법의 문제점과 개헌의 방향성을 무려 15페이지에 걸쳐 구구절절 써놓았다. 그러는 과정에서 이번에도 중국 고사와 서양의 사상가를 인용했는데, 대통령이 헌법과 법률을 위반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는 굳이 중국 고사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당연하게 말할 수 있는 내용이며, 권력구조가 지나치게 집중되면 각종 비리의 원인이 된다는 이야기 또한 굳이 플라톤까지 끌어오지 않아도 누구나 생각해낼 수 있는 내용이다. 게다가 "바르고 정의로운 것을 실천하라는 말씀"을 이야기하기 위해 굳이 또 성경까지 끌어왔는데, 마찬가지로 이건 정말이지 쓸모없는 내용이다. 지금까지 안창호 재판관은 법률의 위헌 여부를 심사할 때 이것이 성경말씀에 어긋나는지를 고려하였다는 것인가? 쓸데없이 동서양 사상가들을 인용하는 데에서 오는 황당함 외에도, 헌재 재판관이 도대체 어떤 기준으로 위헌심판에 임하는지에 대한 걱정이 앞선다.

업데이트: 동아일보 송평인 논설위원이 안창호 재판관의 보충의견을 비판하는 칼럼을 써냈다. 송평인에 따르면 “지도자가 위법한 행위를 했어도 용서한다면 어떻게 백성에게 바르게 하라고 하겠는가(犯禁蒙恩何爲正).”는 제대로 된 출처가 없는 말이며, 플라톤의 "국가"를 인용한 것은 맥락에 어긋난다. 또한 정교분리를 원칙으로 한 나라에서 성경을 인용한 것도 부적절하다고 그는 주장했다. 평소 송평인 위원이 쓰는 글에 동의하지 않는 편이지만, 위의 지적들은 대체로 타당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