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요미우리 신문에 한 40대 남성 회사원이 익명으로 고민 상담 투고를 했다. 아내와 자식이 있는데 직장의 20살 여성을 사랑하게 되었다는 내용. 참고로 투고자의 자녀도 20살이라고 한다. 상담 내용도 매우 전형적인 [사랑에 빠져버린 나] 스토리.
"날 보면 손을 흔들어 준다" "연령차를 신경 쓰지 않고 즐겁게 대화도 해 준다" "내가 독신이고 좀 더 젊었다면 날 연애 상대로 생각해 줬을 것 같다" 등등. 불륜할 생각도 없고 아내나 동료들에게 이 감정을 들키기도 싫다는 건 그나마 가상한 일이다.
투고자는 이 감정을 "내 안에 [20대의 나]란 존재가 생겨버린 것 같다"라고 묘사하며, 나 혹은 그녀가 퇴사하거나 그녀가 결혼할 때까지 이런 괴로움이 이어지는 것은 견딜 수가 없으니 그 [20대의 나]를 쫓아낼 방법을 알려달라고 하며 글을 마친다.
일본의 정통 보수지 요미우리 신문이 고민하는 독자를 위해 준비한 응답자는 올해 72세의 작가 데쿠네 타츠로 씨. 글의 첫머리에서 우선 결론을 내린다.
"모두 당신의 망상입니다"
이어지는 내용은 인쇄본을 각 회사 벽에 걸어뒀으면 좋겠다 싶을 정도다.
그녀는 당신에게 직장 상사로서 호의를 갖고 있을 뿐이고, 편하게 대화하는 것은 당신을 이성으로서 좋아하지 않는다는 뜻이라는 사실을 명쾌한 필치로 지적한다. 요즘 젊은 여성들은 밝고 활기찬데 그걸 당신 세대는 연정으로 오해하려 든다는 명문도 등장한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20대의 나] 스토리. 데쿠네 씨는 투고자가 마음만은 20대라서 그런 생각을 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확히 40대다운 심리상태이기 때문에 20살 이성에게 마음이 끌리는 것이며 본인도 잘 알고 있듯이 꼴사나운 일이라고 지적한다.
과연 정통 보수지 요미우리. 조금도 투고자를 옹호하거나 어르고 달래려 들지 않는다. 데쿠네 씨는 글 후반에 "자신을 꾸짖어라"라는 말을 남기며 한 걸음만 잘못 디뎌도 모든 것을 잃는다는 것을 반복해서 생각하면 망상에서 깨어날 수 있을 거라 조언한다.
영향력 있는 일간지가 무려 종이로 인쇄된 지면을 통해 [내 안의 20대 이론]에 철퇴를 내린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젊은 여성에 대한 어긋난 편견으로 흔한 양비론에 빠질 위험이 없는 작가를 선정한 선구안도 인상적이었다. 훌륭한 기획.
한 익명 유저가 올린 트윗 타래를 가져왔다. 확실한 출처가 없는 글은 가급적 올리지 않으려는 편인데, 다행히도 실제 요미우리 신문에 올라온 내용임을 발견했다. 온라인 버전을 읽으려면 가입 및 로그인해야 한다.